부산에 거주하던 이용우군은 개학 이틀 전인 2009년 8월 22일 잠깐 놀러나간다며 집에서 외출하였고 그대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틀이 지나 가족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였고 휴대폰 위치 추적 결과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는 전남 완도군 청산면이며 그 이후로는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실종 7일째, 집에서 외출한 날 탄 것으로 확인 된 제주행 승선권을 발견하였다. 이 승선권에는 이 군의 글씨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집 앞 은행에서 집에서 나간 직 후 현금 2만원을 인출한 것이 확인되었다. 표정은 평소와 같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별 다른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이후 배 안에서 이 군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났으며 목격자가 배 안에서 찍은 사진에 이 군이 우연히 찍혀있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제주행 배에 탄 것은 확인되었으나 다음날 새벽 하선시 통과하는 여객터미널의 CCTV 기록에서는 이 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고 실종 36일 째인 2009년 9월 20일, 경남 통영 매물도 해안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된 부근에서는 이 군의 신분증과 휴대전화, 청바지 등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단순한 가출이라고 하기엔 가방과 옷가지 없이 지갑과 휴대폰만 챙긴 가벼운 차림으로 외출하였으며 무단결석, 조퇴, 지각 등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평소 온순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다. 또한 부모님과 시골 가는 것 외에는 혼자서 부산시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실종 전날 제주도 가는 배편을 검색해 본 것으로 보아 자의로 제주도에 간 것은 분명하나 부산 시내를 벗어난 적 없는 이 군이 혼자서 제주도로 왜 간 것인지가 사건의 핵심이었으나 그에 대한 단서가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제주도 행 여객선의 난간이 어른의 가슴부분까지 올라오는 높이로 설치되어있기 때문에 실족사 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 군이 배에 탄 날은 여름방학 마지막 날이어서 승객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객실 안에 2백여 명의 승객이 있었고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갑판에도 사람이 많아 불의의 사고가 생겼다면 사람들이 모르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이 군의 사고는 제 3자에 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이 군이 제주행 여객선에서 자살 혹은 실족에 의해 바다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