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윤기원 (1987.05.20 - 2011.05.06)
- 1987년5월20일 부산에서 출생하여 김해외동초 5학년 때 축구에 입문하여 거제연초중, 거제고, 아주대학교 졸업하고 2010년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하여 2010년에는 신입으로 2군 경기에 뛰었으며 1군 데뷔전을 K리그 최종전 제주 원정에서 수퍼세이브 선방을 하였습니다. =스포탈코리아 신문기사= 2011년 인천유나이티드 주목해야 할 선수-NO1. 윤기원, 골키퍼 "인천감독은 그 동안 골키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흙 속에 분명 진주가 존재했다. 윤기원 골키퍼가 바로 그 진주였다. 지난 시즌 K리그 최종전에서 ‘미친 선방’으로 제주의 1위 달성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윤기원의 활약상은 인천 감독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인천감독 역시 이 날 경기가 끝난 이후 “윤기원 골키퍼의 발견이 최대의 소득이다. 앞으로 기대해 볼만 하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2011년 5월6일 오전11시30분경 하루아침에 날아든 아들의 비보는, 일산화탄소로 인한, “자살”이였습니다. 아들은 당시, 팀 자체에서 골키퍼로서 인정을 받는 시점 이였으며 누구보다 곧고 반듯하며 긍정적이며 성실했고, 5월3일 마지막 통화에서 5월8일 대전 팀과의 경기에 출전할거라며 경기장에 다녀가라는 말을 평소와 다름없이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들은 “자살”을 할 정도로 나약하거나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경솔한 짓을 할 아들이 절대, 아니며 “자살”할 환경도 전혀 아니라는 사실에, 가족은 경찰의 설레발이식(자살이 확실하니 빠른 수습을 권하며 마무리 하려함)결정을 인정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족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 현장을 말끔히 치워버린 점과(담당 경찰은 사고 장소를 잘 모르고 있었슴) 경찰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수사의 미흡한 점, 무엇보다도 아들은 평소 집 앞, 가게를 가더라도 옷을 갖춰 입고 나가는 성품입니다. 오전 자체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서 착용하는 츄리닝과 슬리퍼 차림으로 왜 하필이면 인천에서 서울 서초구 만남의 광장까지 가서 “자살”을 했냐는 점, 그리고 유서 한 장도 없고, 착화탄을 산 흔적도 없다는 등 많은 미비한 점들을 용납할 수 없을뿐더러, “나는 먼지 자욱한 운동장 골대 앞에서 지친 땀을 흘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 -(윤 기원)- 는 아들 이였기에 “절대, 그런 무모한 짓을 할 리가 없다” 는 아들에 대한 굳은 믿음이 더욱 “자살”을 인정할 수 없는 점인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만의하나 아들이 “승부조작”을 했다면 지금, 이 세상에 존재 하겠지요. “승부조작을 강하게 거부한 윤 기원을 00이 죽였다”는 말은 이미 축구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기가 막히고 엄청난 일들을 어찌, 말로서, 글로서, 다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 그 흔한 CCTV 자료 한 장 없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경찰의 수사는 조작의 흔적들이 확연했고 “승부조작” 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언론의 잘못된 추측기사와 억측 보도로“윤 기원”이란 선수는 세상의 이목에 오명과 불명예로 각인이 되었습니다. 졸지에 자식을 보내고 온전한 삶을 살아갈 부모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참담한 생활로 뒤 바퀸 저희 가족은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고통의 일상이 지속됐습니다. 추악한 이 세상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들이 남긴 족적을 알고, 그 진실을 바로 잡기위한 일념하나로 지금은 시골로 귀촌하여 두문불출하고 지냅니다. 아직도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지 못 했습니다. 불의 앞에 몸을 던진 자랑스러운 아들을 이제는 편히 보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부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생의 큰 포부와 축구가 전부인 꿈을 품은 한 청년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내 아들이다. 내 형이고 내 아우이다” 여기시고 권세보존과 나 하나 잘 살자는 안위를 벗어 던지고, 대의를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루를 살아도 정의롭고, 자신에게 떳떳한 삶이되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단 일초를 숨 쉬는 것조차 아들 기원이에게 죄스럽고, 미안하고, 면목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족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진심어린 양심선언과 결자 해지를 기다립니다. 정의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윤 기원 선수의 영혼이 곤히 잠들 수 있게 두 손 모아 부탁드립니다.
윤 기원선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축구공 하나에 밥 말아 먹을 것이다.”(2000년)
“나는 먼지 자욱한 운동장 골대 앞에서, 지친 땀을 흘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2006년)
“나는 단 한 번도 골대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2008년)
“내가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내가 행복을 즐겨야 할 장소는 녹색 그라운드이다.
비장의 무기가 아직 나의 손에 남아있다. 그것은 희망이다.(2011년 3월) -윤기원 비망록-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팬들은 윤 기원 선수에게 “미소 천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축구에 입문하면서부터 축구를 하지 못한 그 순간까지,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던 윤기원,
혹독한 훈련이 거듭될수록 더 많이 웃는다며 “연구대상”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거제고 골키퍼
코치의 말이 떠오릅니다.
축구를 하면서 주전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고, 진학하는 학교 마다 우승과 좋은 성적을
내어도 항상 겸손했습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 선배에 대한 예의와 후배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선수였으며,
가는 곳 마다 “분위기 메이커”라고 칭찬했습니다. 모든 사리에 늘 누구에게나 관대했고 긍정적이고 바른 성품의 소유자라고 말합니다.
아주대학교 축구부 숙식을 담당하시던 어머니께서 “20년 동안 이일을 하면서 많은 선수들을 봐 왔지만 기원이처럼 성실하고 예의 바르며 반듯한 선수는 처음이다. 4년간, 나에게 외출전이나 후, 그리고 조석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인사를 했으며 안부를 물었다. 기원선수의 어머니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라고 말씀 하셨지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윤기원이다.” 라고 말입니다.
세상에 별이 되겠다던 윤기원!
그러나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윤기원!
만인이 바라보는, 모두의 가슴에 별이 되어버린, 윤기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합니다!